목차 1.도시계획 2.신여성 -등장배경 -신여성과 자유연애 3.문화 -일본의 문화정책 -문학 -예술 본문 서울은 조선조의 성립 이후 지난 600년에 걸쳐 계속 우리나라의 수도였습니다. 서울은 단순한 행정의 중심이 아니라 권력의 중심이었으며 국가와 민족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은 새로운 도시화 현상을 야기했고 이와 함께 도시의 성격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일제는 도시를 침략의 전초기지로 개념화하였고 모든 조선의 도시를 주변화시켜 저항세력의 결집을 막으려 하였습니다. 따라서 일제는 전통적인 도시의 기능을 정지시키거나 무력화시키고 그 대신 일본과의 연결고리로, 식민 통치와 수탈의 기지로서 새로운 도시를 만들게 됩니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항만 도시가 대거 탄생하게 됩니다. 일제는 조선의 강제 합방 이후 새로운 부제를 택하여 도시체계를 새롭게 정비하게 된다. 그 내용을 보면 과거의 도시 가운데 서울, 평양, 대구만이 시로 남고 나머지는 행정적으로 지위가 강등되고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9개의 해안지역이 새롭게 시로 지정된다. 즉 3개의 내륙도시와 9개의 항만도시로 구성되는 새로운 도시체계가 탄생하게 된다. 내륙 전통도시는 조선의 식민통치를 위한 고려에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는 모두가 일본 침략의 전초지로서 새로이 건설된 항만도시이다. 내륙 교통로를 따라 형성된 전통적인 도시체계는 완전히 와해되고, 일제의 수탈로를 따라 새로운 도시체계가 형성된 것이다. 철도의 발달과 함께 나타나는 새로운 내륙도시의 형성과 지정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붉은색 굵은 선 국철 파란색 굵은 선 사설철도 문경새재 등 기존 내륙 교통로 대신 빨간 가는 점선을 따라가면 일본에 도착하는 것을 알 수 있음. 당시 전체 국토의 40%가 국유지, 25%가 조선인 소유, 19%가 일본인 소유였습니다. 사진은 마산의 1912년 당시 마산 일대의 토지를 누가 소유했는지 나타낸 지도. 빨간색이 일본인 소유임을 나타냄. 이러한 토지 소유의 불평등이 당시 일제에 의한 도시계획에 많은 영향을 끼침. 이것은 마산의 예를 든 것이지만 거의 전 국토가 대부분 일본의 소유였다는 것을 연계하여 설명하면 될 것 같음. 일제강점기에 시행되었던 각종 도시계획 정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성부 시구개정입니다. 1910년대의 도시계획은 시구개정과 시가지 건축물취재규칙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시구개정은 도로 등 중요 도시시설의 계획 및 확보에 중점을 둔 것으로 도시구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구개정은 1912년 10월 7일 총독부훈령 제 9호로 각 지방에 시달된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방에 있어서 추요(樞要)한 시가지의 시구개정 또는 확장을 할 때에는 그 계획설명서 및 도면을 첨부하여 미리 인가를 받을 것." 이는 시가지내의 도로 개설을 계획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같은 조선에서의 시구개정 도입 과정은 그 모델이 된 동경과 이름은 비슷하나 그 과정이 매우 상이하다. 동경의 시구개정은 1888년 시구개정조례가 제정되기 10여년 전인 1976년부터 차근차근히 준비되었지만 서울의 경우 갑자기 시구개정에 대한 총독 명의의 훈령을 내리고 한 달 후 서울에 대한 계획을 고시해버린다. 이는 시구개정이 총독부의 독단에 의해 폭력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키워드 민중생활, 식민지하, 식민지하의, 역사의식, 사회변동 |
2017년 4월 18일 화요일
사회변동과 역사의식 -식민지하의 민중생활
사회변동과 역사의식 -식민지하의 민중생활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