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교류사] 일제치하의 한국영화사.pptx |
목차 1.한국에서 상영된 최초의 영화 2.초기 활동사진의 정착 과정 3.한국영화의 탄생 4. 한국 최초의 극영화 5.한국인 스탭만으로 제작된 최초의 영화 6.최초의 대형 영화사 조선키네마 주식회사 7.무성영화시절의 개척자들 8. 무성영화의 귀재 춘사(春史) 나운규(羅雲奎) 9.조선키네마에서의 창작활동 10.나운규 프로덕션 11. 발성영화의 시작 12. 최초의 영화제와 한국 영화 베스트 10 13. 일제 말의 수난기와 어용 영화들 참고문헌 본문 한국의 영화제작은 일본보다 10여년 뒤쳐짐 - 자본의 부재, 기기와 시설의 부재, 기술자의 부재 한국 최초의 키노 드라마(연쇄극) -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 1919 그 당시 인기의 내리막길에 있던 신파극에 활기를 가져다 준 계기 부분적이나마 한국인의 손으로 직접 영화를 제작. 이러한 연쇄극이 시도되어 영화제작이 진일보.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저축 장려용으로 만든 계몽영화 - <월하의 맹서>, 1923 활동사진 연쇄극에서 벗어난 극의 틀을 갖춘 최초의 영화 제작 목적이 저축 장려에 있었기에 무료 상영 감독 윤백남의 배출 1923년 <월하의 맹서>이후 <국경>, <춘향전> 등 두 편의 영화가 더 제작. 당시 촬영기술을 습득한 한국인이 드물어 촬영은 일본인이 담당 단성사 경영주 박승필이 영사기사 이필우에게 촬영을 담당시킴 한국인 스탭만으로 제작된 최초의 영화 - <장화홍련전> 최초의 장편 극영화 참고문헌 최창호,홍강성 저, <한국영화사-나운규와 수난기 영화사>, 일월서각, 1999 김화 저, <이야기 한국영화사>, 하서출판사, 2001 호현찬 저, <한국영화 100년사>, 문학사상사, 2000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사: 開化期에서 開花期까지 키워드 일제치하, 국제교류사, 한국영화사, 영화사, 교류사 |
2017년 9월 20일 수요일
국제교류사 일제치하의 한국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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